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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도깨비에 나왔던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시 몇편을 소개합니다.
아침 식사 / 선운사에서 / 그리움 /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 / 당신의 눈물 / 너에게 쓴다 / 미라보 다리
아침 식사 _ 자크 프레베르
그이는 잔에 커피를 담았지.
그이는 커피잔에 우유를 넣었지.
그이는 우유 탄 커피에 설탕을 탔지.
그이는 작은 숟가락으로 커피를 저었지.
그이는 커피를 마셨지.
그리고 잔을 내려 놓았지.
내겐 아무 말 없이
그이는 담배에 불을 붙였지.
그이는 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었지.
그이는 재떨이에 재를 털었지.
내겐 아무 말 없이
그이는 나를 보지도 않고 일어났지.
그이는 머리에 모자를 썼지.
그이는 비옷을 입었지.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이는 빗속으로 떠나버렸지.
말 한마디 없이 나는 보지도 않고
그래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어 버렸지.
선운사에서 _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그리움 _ 신달자
내 몸에 마지막 피 한 방울
마음의 여백까지 있는 대로
휘몰아 너에게로 마구잡이로
쏟아져 흘러가는
이 난감한
생명 이동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 _ 황진이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서리 맞은 들국화 노랗게 피었구나..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당신의 눈물 _ 김혜순
당신이 나를 스쳐보던 그 시선
그 시선이 멈추었던 그 순간
거기 나 영원히 있고 싶어..
물끄러미
물
꾸러미
당신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 것인
물 한 꾸러미..
그 속에서 헤엄치고 싶어..
잠들면 내 가슴을 헤적이던
물의 나라
그곳으로 잠겨서 가고 싶어..
당신 시선의 줄에 매달려 가는
조그만 어항이고 싶어..
너에게 쓴다 _ 천양희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 풍화되었다.
미라보 다리 _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우리 사랑도 흐르는데
나는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슬픔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서로의 손잡고 얼굴을 마주하고
우리들의 팔로 엮은
다리 아래로
영원한 눈길에 지친 물결들 저리 흘러가는데..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사랑이 가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이 떠나가네
삶처럼 저리 느리게
희망처럼 저리 격렬하게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하루하루가 지나고 또 한 주일이 지나고
지나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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