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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에 나왔던 시집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에 수록되어 있는 시 몇편을 소개합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낮은 목소리 - 장석남
더 작은 목소리로
더 낮은 목소리로, 안 들려
더 작은 목소리로, 안 들려, 들리질 않아
더 작은 목소리로 말해줘
라일락 같은 소리로
모래 같은 소리로
풀잎으로 풀잎으로
모래로 모래로
바가지로 바가지로
숟가락으로 말해줘
더 작은 목소리로 말해줘
내 사랑, 더 낮은 소리로 말해줘
나의 귀는 좁고
나의 감정은 좁고
나의 꿈은 옹색해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너의 목소린 너무 크고 크다.
더더 낮고 작은 목소리로 들려줘
저 폭포와 같은 소리로,
천둥으로,
그 소리로..
사랑의 증세 - 로버트 그레이브스
사랑은 온몸으로 퍼지는 편두통
이성을 흐리게 하며
시야를 가리는 찬란한 얼룩.
진정한 사랑의 증세는
몸이 여위고, 질투를 하고,
늦은 새벽을 맞이하는 것.
예감과 악몽 또한 사랑의 증상.
노크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무언가 징표를 기다리는....
용기를 가져라, 사랑에 빠진 이여!
그녀의 손이 아니라면
그대 어찌 그 비통함을 견딜 수 있으랴?
경쾌한 노래 - 폴 엘뤼아르
나는 앞을 바라보았네
군중 속에서 그대를 보았고
밀밭 사이에서 그대를 보았고
나무 밑에서 그대를 보았네.
내 모든 여정의 끝에서
내 모든 고통의 밑바닥에서
물과 불에서 나와
내 모든 웃음소리가 굽이치는 곳에서
여름과 겨울에 그대를 보았고
내 집에서 그대를 보았고
내 두 팔 사이에서 그대를 보았고
내 꿈속에서 그대를 보았네.
나 이제 그대를 떠나지 않으리.
농담 -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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