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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에 나왔던 시집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에 수록되어 있는 시 몇편을 소개합니다.
사랑의 물리학 - 김인육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백 년 - 이병률
백 년을 만날게요
십 년은 내가 다 줄게요
이십 년은 오로지 가늠할게요
삽십 년은 당신하고 다닐래요
사십 년은 당신을 위해 하늘을 살게요
오십 년은 그 하늘에 씨를 뿌릴게요
육십 년은 눈 녹여 술을 담글게요
칠십 년은 당신 이마에 자주 손을 올릴게요
팔십 년은 당신하고 눈이 멀게요
구십 년엔 나도 조금 아플게요
백 년 지나고 백 년을 한 번 이라 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을 보낼게요
와락 - 정끝별
반 평도 채 못되는 네 살갗
차라리 빨려들고만 싶던
막막한 나락
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
불후의 입술
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
헐거워지는 너의 팔 안에서
너로 가득 찬 나는 텅 빈,
허공을 키질하는 바야흐로 바람 한자락.
초승달 - 김경미
얇고 긴 입술 하나로
온 밤하늘 다 물고 가는
검은 물고기 한 마리
외뿔 하나에
온 몸 다 끌려가는 검은 코뿔소 한 마리
가다가 잠시 멈춰선 검정고양이
입에 물린 생선처럼 파닥이는
은색 나뭇잎 한 장
검정 그물코마다 귀 잡힌 별빛들
나도 당신이라는 캄캄한 세계를
그렇게 다 물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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